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리고리 쿨리크 (문단 편집) === 출생에서 적백내전 === [[우크라이나인]]이다. 1890년 [[러시아 제국]] 폴타바의 두드니코보(현재 [[우크라이나]] [[폴타바]] 도 두드니코베(Дудникове))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4년을 마치고 농부로 일하다가, 1912년 11월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포병]]으로 참전했으며, 부사관까지 승진하고 용맹을 떨쳐 성게오르기 4급 훈장을 받았다. 1917년 [[2월 혁명]]이 발발하고, 러시아군은 계급체계가 붕괴되고, 소비에트(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지휘관은 선거로 선출된다. 병사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았던 그는 바로 사단 소비에트의 위원장(사단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때부터 좌경화된 그는 [[볼셰비키]]로 전향하고, 노련한 고참 혁명가인 [[보로실로프]]의 부대에 자신의 사단을 이끌고 합류, [[적백내전]]에 참전한다. 이 [[보로실로프]]와의 친분은 쿨리크에게 출세가도를 달리게 하는데, 보리실로프는 군사적 무학자로서 포병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쿨리크는 그마나 기술병과인 포병 하사관으로 잔뼈가 굵어서 보로실로프의 든든한 포병참모역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로실로프는 훗날 지도자가 되는 스탈린의 최측근이기도 했고, 당연히 쿨리크도 군내 스탈린 인맥으로 간주되었다. 적백내전과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참전한 그는 다시 용맹을 떨쳐 2번의 적기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때 차리친 (훗날의 [[스탈린그라드]]) 방어전에서 정치장교였던 스탈린 휘하에서 싸워서 스탈린과 친분을 쌓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